전남 구례군 지리산자락에는 아버지의 복숭아 농장이 있습니다. 퇴직 후 고향으로 내려가셔서 복숭아 농장을 수년째 일구고 계신데, 농사일은 참으로 고된 일이라 나이 생각하셔서 너무 힘들게 일하지 마시라 매번 만류를 드렸지만어찌나 애지중지 정성을 다하여 돌보시는건지...매년 여름만 되면 유난히도 아름다운 핑크빛에 맛과 향, 크기까지 최고 일품인 아버지의 복숭아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집어삼킨 2020년에는 전남 지방에 기록적인 폭우와 함께 각종 기상 이변으로,복숭아 나무들이 병해를 입기도 했고, 수확한 복숭아의 크기나 당도가 예년만 못하다며 많이 속상해 하셨었죠. 심지어 애지중지 키워온 복숭아 나무들을 그냥 다 잘라버릴까도 고민하셨습니다... 밀라비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꿀벌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들을 자주 보게되었는데, 그 중에서 춘천MBC 다큐멘터리 : (1부) 꿀벌의 경고, (2부) 꿀벌의 죽음, 풍요의 종말을 보면서아버지의 복숭아도, 꿀벌의 위기도 그리고 2020년 우리의 모습들도 서로 별개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다큐에서는 몇년전부터 원인 불명의 꿀벌 바이러스에 국내 토종벌들이 감염되어 멸종위기에 놓여있으며,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가장 마음이 아팠습니다.마치 2020년 전세계 인류에게 몰아닥칠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사전 경고장을 꿀벌을 통해 먼저 보여주었던 걸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소름이 돋았습니다.꿀벌과 복숭아, 그리고 인간. 이 셋은 이 지구상에 발을 딛고 서있는 한,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니까요.... 만일, 이상기후로 복숭아 나무가 병해를 입고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한다면 꿀벌이 찾아와도 좋은 꿀을 충분히 얻을 수가 없겠죠. 또한 봄, 여름의 잦은 강우와 저온 현상은 꿀벌 바이러스 질병 발생률을 높여 꿀벌 개체수를 감소시킨다고 합니다.꿀벌의 개체수가 줄어들수록 복숭아 꽃의 화분 수정이 어려워지고, 그럼 그토록 크고 달콤하던 아버지의 복숭아는 더이상 맛보기 힘들어지겠지요. 꽃의 화분 매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건강한 열매가 맺히지 않을 뿐더러 씨앗으로써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지구에 존재하는 식물의 약 65%는 화분 수정이 필요하며, 주로 곤충류, 비, 조류, 바람이 주요 매개체인데, 이중 곤충류에서는 거의 대부분 꿀벌이 그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우주 최강 매치 메이커인 꿀벌이 이 지구상에서 점점 사라진다면, 꿀벌의 매개로 수정이 되고 열매를 맺어야하는 수많은 식물들은 점차 사라질 것이며, 그 공포는 농업의 붕괴 뿐만 아니라, 상위 먹이사슬을 따라 올라가 인간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EU에서는 화분 매개 곤충에 의한 경제적 가치를 약 271조 원으로 추산하였으며, 미국 농무부(USDA)는 화분 매개가 미국 경제에 미치는 가치를 약 15조 7,983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작은 꿀벌들이 환경과 농업, 그리고 인류의 번영에 미치는 힘은 참으로 엄청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사진은 해질녁 복숭아 수확이 거의 끝난 후, 아버지의 농장 풍경입니다. 힘든 농장일을 혼자서 다 하시면서도 늘 즐거워하셨는데,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렸던 복숭아들을 다 수확하고 나니 왠지 허전해지시는 모양입니다. 복숭아빛 석양으로 물든 농장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이 평화롭고 고요한 느낌들을살아가면서 일상에 지치고 허기질 때마다 기억에서 자주 꺼내어 보고 싶어집니다. 아버지의 복숭아 농장이 오래 오래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